1. 왜란 이후 ~ 19세기까지
조선은 일본과의 7년 전쟁 이후 국교를 단절하였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들어선 '도쿠가와막부'는 조선과 외교 관계를 재개할 것을 원하였습니다.
조선 정부는 일본의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을 돌려받기 위해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조선은 일본과 다시 강화를 하고, 조선인 포로 7천여 명을 되돌려 받으면서 국교를 재개하게 됩니다. (선조 40년, 1607년)
이때 조선은 일본보다 한층 더 격이 높은 대우를 받으면서 외교 관계를 맺어나가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사신은 조선의 한양(서울)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동래의 왜관에서 용무를 보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또한 일본은 조선의 예조참판이나 참의에게 일본 국왕의 친서를 보내서 사신 파견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러한 관례를 통해서 일본은 60여 차례 조선에 방문을 하였으며, 조선은 1607년 ~ 1811년의 기간 동안 총 12 차례의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을 하였고, 조선과 일본은 약 250여 년간 평화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통신사는 일본의 막부 장군이 바뀔 때마다 그러한 권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원하는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축하사절단'의 명목으로 파견이 되었습니다.
통신사의 규모는 약 4~5백 명 수준이었으며, 일본은 이러한 조선의 통신사를 맞이하는데 14백 여척의 배와 1만여 명의 인원이 동원하였으며, 이들 통신사를 접대하는 데에 일본의 1개 주의 1년 경비를 소비할 정도였습니다.
통신사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에도(현재 도쿄)'까지 가는 데에 먼저 배를 통해서 부산 ~ 오사카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오사카에서부터는 육로를 통하였는데, 왕복 기간은 통상 5개월~8개월 정도였습니다.
통신사는 국왕의 외교문서인 '서계'를 휴대하였으며, '인삼, 호피, 모시, 삼베, 붓, 먹, 은장도' 등을 예물로 가져갔습니다.
일본에서는 통신사가 올 때마다 전 국가적인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통신사 행렬을 환영하고 성대한 향응을 베풀었으며, 통신사들이 머무르는 숙소에서는 통신사 수행원들로부터 글이나 글씨를 받기 위해서 군중들이 몰려들곤 하였습니다.
일본의 화가들은 통신사 일행의 활동을 대형 병풍, 두루마리 그림 등으로 그렸으며, 이때 만들어진 수많은 작품들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고, 당시 통신사 일행이 전해준 소소한 선물들을 귀중하게 간직하여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에 다녀오게 되면 일본 내에서는 조선 붐이 일었으며, 일본의 유행이 바뀔 정도로 당시 통신사의 영향력은 대단하였습니다.
2. 19세기 이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 내부에서도 조선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의 일부 지식인의 경우 통신사에 대한 환대가 중국 사신 보다도 높은 데에 불만을 품고 막부에 요청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18세기 이후 일본 고유의 문화와 민족정신 등을 강화(국수 정신) 하기 위해서 '일본서기'를 새롭게 연구하는 '국학운동' 이 펼쳐졌으며, 이는 일본 지식인들의 조선에 대한 견제심리가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반조선 적인 국학운동이 더욱 발전하였으며, 1811년(순조 11년)에는 조선의 통신사를 대마도에 머무르게 하면서 업무를 보고 돌아가게 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인들이 조선 통신사 일행을 접촉하는 것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811년을 마지막으로 조선과 일본의 평화적인 문화교류는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에서는 국학운동이 '해방론'으로 발전을 하였으며, 19세기 중엽부터는 조선을 무력으로 침략하자는 '정한론'이 다시 대두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한편 일본을 다녀온 조선의 통신사 일행들이 남긴 견문록이 현재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들 견문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이 문화 수준은 낮으나 군사적으로는 강력하며, 재침략의 우려가 있음' 이 지적되어 있어서 조선 지식인들의 일본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주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서기' 등 역사책을 들여와서 고대사 연구에 참고를 하기도 하였는데, '한치윤'의 '해동역사'가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임진왜란 이후 일본 과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광해군과 인조반정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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